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논란이 뜨겁습니다. 하영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증조부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역사학자 심용환의 신중한 입장까지 더해져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심용환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의 흐름을 정리하고, 역사적 평가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 7일 방송된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이었습니다. 하영은 “증조부께서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했으며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고 밝히며 4대 의사 집안의 내력을 소개했습니다. 방송 직후 누리꾼들은 증조부의 신원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근대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재조명되었습니다.

논란의 핵심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내용 |
|---|---|
| 하영 | 증조부 안상호 소개, 4대 의사 집안 자랑 |
| 의혹 |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 매일신보 보도 |
| 소속사 | 초기 “사실무근” 후 하루 만에 번복 |
| 심용환 | 친일파 단정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 |
| 하영 사과 | 3일 만에 자필 사과문 게재 |
목차
심용환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 대정친목회 기록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록이 확인되었습니다. 대정친목회는 1910년대에 만들어진 친일 성향의 친목 단체로,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학자 장신이 발표한 논문 “대정친목회와 내선융화운동”에는 안상호가 평의원 21명 중 한 명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후 명단에서는 사라지지만, 이 기록만으로도 친일 의혹이 제기될 만한 근거가 됩니다.
또한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안상호가 등장하는 내용도 전해집니다. 일본 부인과의 국제 결혼과 관련된 보도로 알려졌으며, 이로 인해 한국인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런 기록들을 종합하면 안상호가 식민지 지배에 순응하고 일부 친일적 행보를 보였던 것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데 역사학자 심용환은 특정 단체 가입 기록만으로 안상호를 손쉽게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올린 장문의 입장문에서 “대정친목회 명단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제기하며, 안상호의 친일 활동이 초기 가입 사실과 단편적인 기록에만 의존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민법 정신으로 본 친일파 단정의 문제
심용환은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반민법은 적극적인 부일 협력자에 대해서는 단호한 처단을, 그렇지 않은 자나 반성하는 자에게는 관대한 처벌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역사학에 단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쉽게 규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과거사를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겠냐”고 말합니다.
실제로 안상호는 황실 촉탁의로 전염병 대응에 힘썼고, 자혜병원 설립에 참여하는 등 근대 의료기관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공로가 친일 행적을 덮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 평가에는 다각도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심용환의 주장입니다.
하영의 자필 사과와 후폭풍
논란이 계속되자 하영은 3일 만에 자필 사과문을 게재했습니다. “그동안 가족을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며 “무지한 상태로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왔다”고 반성했습니다. 또 논란 초기 소속사가 내놓은 “사실무근” 입장에 대해서도 “충분한 확인 없이 잘못된 입장이 전달되도록 한 점 또한 저의 부족함”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사과에도 불구하고 후폭풍은 거셉니다. 그녀가 출연한 방송의 다시보기 서비스가 중단되었고, 넷플릭스 ‘이런 엿같은 사랑’의 홍보 인터뷰가 취소되었으며, 의류 브랜드와 삼성전자 광고 영상이 비공개로 전환되었습니다.
역사 평가의 균형과 공감의 필요성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 인물을 단순하게 선과 악으로 나누려고 합니다. 하지만 식민지 시기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살았던 이들의 선택은 여러 층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안상호처럼 엘리트였지만 친일 단체에 가입한 인물도 있었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도 있었습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려면 역사 연구자의 꼼꼼한 작업과 대중의 관심이 함께 필요합니다.
심용환의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는 “현재는 친일인명사전에 안상호의 이름이 빠져 있고 연구 결과가 위와 같은 수준”이라며 “추가적인 연구와 전문가들의 합의, 국민적인 소통으로 결정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누군가를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을 정확히 규명하는 태도입니다.
과거 제가 대학에서 역사 강의를 들을 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역사는 단순히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번 논란처럼 한 인물의 행적을 놓고 갑론을박이 오갈 때, 우리는 그 시대의 사회적 압력과 개인의 선택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하영의 잘못도 있습니다. 가족의 자랑으로만 알고 있었던 증조부의 행적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대중에게 소개했고, 소속사의 성급한 대응으로 논란을 키운 것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직접 자료를 찾아보고 사과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역사를 대하는 성숙한 태도일 것입니다.
결국 심용환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은 단순한 연예계 이슈를 넘어 역사 교육과 평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과거사를 대할 때 감정적인 반응에 휩싸이기보다 면밀한 검증과 열린 대화를 통해 지혜로운 결론에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대정친목회가 무엇인가요?
A: 1910년대에 결성된 친일 성향의 친목 단체로,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안상호는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Q: 하영의 증조부가 친일파로 확정되었나요?
A: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심용환은 명확한 친일 부역 행위가 밝혀지지 않았다며 단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Q: 하영은 어떤 사과를 했나요?
A: 자필 사과문을 통해 증조부에 대한 무지와 소속사의 잘못된 대응에 대해 반성하며 사죄했습니다.
이상으로 심용환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에 대한 글을 마칩니다. 역사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질문을 던지지만, 꾸준한 탐구와 존중으로 접근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