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 30년 1. 1968년 개국 당시의 편성 환경 1959년 청취자에게 다이얼 선택권을 주어 민방의 활로를 여는데 기여한 부산 문화방송이 개국한지 10년만인 1968년 6월 22일은 강원도 최초의 민영 상업방송인 영동방송 주식회사 강릉MBC 전신)가 개극함으로 강원방송사에 커다란 획을 긋게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민영방송의 개국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진 것이었다. 경제 규모의 취약이나 우리 나라 방송 정책의 경직성 등이 민간방송의 등장을 저해한 요인으로 볼 수 있으나 문화방송 내적으로는 가맹사의 확장을 통한 사세 강화에 의미가 있었고 지역적으로는 민간상업방송의 개국으로 산업사회의 진입에 동참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게 된다. 강릉문화방송이 개국한 1960년은 민간방송에 대한국민들의 절대적인 호응속에 ..
FM 개국 1980년 정부의 난시청지역 해소정책에 따라 문화방송의 전국적인 FM방송망 개설이 추진되었고 이에 따라 강릉문화방송도 양질의 전파를 청취자에게 공급하여 영동지역민의 정서함양에 이바지하고 향토문화발전에 기여하고자 FM방송개설을 추진하게 되었다. 1985년 1월 24일 FM방송국 가허가를 획득하고 시설을 추진하게 되었다. 연주소 시설과 병행하여 송신소 시설공사를 5월부터 약 2개월간 마치고 6월 4일부터 21일 까지 시험전파를 발사하여 6월 22일 강릉문화방송 창사 17주년 기념일에 맞추어 FM개국을 하게 되었다. 강릉문화방송 FM은 주파수 94.3 출력 5Kv 로 강릉시, 명주군, 양양군, 동해시, 속초시, 삼척군, 고성군, 평창군 지역까지가 가청취 지역이고 이 지역내 137525 가구 60,3..
후생복리 증진 1) 학자금 지급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급은 직장의 수혜로서 획기적인 지원이었다. 중·고·대학생 자녀 2명의 학자금 전액을 지급하고 있다. 1981년 6월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전체 언론인에 대한 공익자금의 직접적인 혜택으로 언론인 복지증진을 위해 언론인 자녀 학자금 지원사업을 실시, 중고등학생 자녀 학자금전액을 지원 받았는데 이 제도는 8년 8월 중단되었다. 그러나 강릉문화방송은 독자적으로 학자금 지급 사업을 계속해서 실시하고 있다. 대학생 자녀 학자금은 개인별로 제세금 공개를 하여 지급하다가 89년 3월부터 각급 대학에 장학생 추천을 의뢰한 다음 그 결과로 장학금을 수여하는 방식으로 전환시켜 학자금에 관한 한 전액 지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편 97년 1월부터는 ..
방송 인력 수급 1) 초창기 인력 방송인력은 전문직으로 개국 당시의 인력으로는 경력자를 선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인력 수급에 고충이 많았다. 초창기 인력 수급은 서울 문화방송에 의뢰해 인력을 확보했는데 특히 방송기술직인 경우 더욱 그러했다. 서울 문화방송에서 선발해 일정기간 연수를 마치고 강릉문화방송에서 근무하게 되는 기술직사원들은 경력사원과 신입사원으로 구성, 연주소와 송신소에 3교대로 근무조를 편성했으며 아나운서직과 PD, 기자직의 경우 타방송사에서 몇몇 경력 사원을 스카우트했고 수습사원은 단기 교육과 경력사원의 현장 교육을 걸쳐 방송업무에 투입했다. 개국 전 필수요원에 대한 스카우트 특채와 5·16장학회에 신입사원 채용을 의뢰하여 연수교육을 마치게 한 뒤 개국요원으로 합류시켰다. 한편 강릉문화방..
기구조직의 확장 1) 초창기의 기구조직 68년 6월 22일 개국 당시 회사 설립과 동시 임원진선임이 끝나고 실무 부서장 대부분은 한국문화방송을 비롯해 타방송사에서 스카웃한 인원으로 대처했다. 초창기에는 회장, 사장, 감사, 전무, 총무부, 방송부, 보도실, 기술부, 송신소 서울 사무소로 기구조직을 갖추었는데 총무부에서는 인사, 관리, 서무 및 광고를 담당했으며 방송부에서는 프로그램 편성제작과 함께 아나운서 업무도 관장했다. 한편 보도실에서는 기자 4명이 취재 보도활동을 했고, 기술부에서는 기술 제작 업무, 송신소에서는 송출 업무를, 그리고 서울 사무소는 서울지역의 광고신탁업무를 관장했다. 2) 자립기의 기구조직 초창기의 기구조직은 임당동 시대의 개막까지 이어지고 71년 9월 15일 회사 명칭이 강릉문화방..
경영권 변동 1) 개국초창기의 영동방송(YBC) 1968년 3월 29일 영동방송 주식회사 설립을 위해 주주 출자로 법인설립을 하게 되는데, 초대 이사회장을 역임한 이방우, 2대 사장을 역임한 김준교, 한국문화방송 사장 조증출, 그리고 한용만, 조수하, 조태호 이사 등 6명의 주주가 10,000주를 출자해 법인을 설립하게 된다. 1970년 들어서는 6명의 주주가 각각 배로 증자해 2만주로 됐다. 회사설립은 이방우, 이종국을 공동 대표이사로 설립등기를 마치면서 본격화됐다. 개국 2주년을 넘기면서 주주들은 증자를 하게 되는데 각 주주마다 배당주식의 배를 증자했다. 이방우 초대 이사회장의 재임기간은 68년 3월 29일, 회사 설립등기일부터 시작되어 72년 2월 10일까지고 초대 이종국 사장 역시 68년 3월 2..
회사의 설립 (AM 라디오 개국) 1968년 6월 2일 영동방송의 개국을 보기전 1967년 10월 대현 이율곡선생제전을 전후해 당시 김형기 강릉시장을 비롯한 각급 기관장과 지역유지 33인의 공동연서로 된 청원서가 정부 요로에 제출되었다. 강릉에 민간 상업방송이 반드시 설립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YBC 영동방송이 개국하기 전에는 강원도내에 KBS의 강릉, 춘천, 원주, 속초 방송국 등 국영방송뿐이었다. 그리고 강릉에 영동방송 설립의 당위성 부각과 태동이 시작된 당시만해도 전국 민영 상업 방송은 서울 문화방송을 비롯해 지방에는 부산문화방송과 대구, 광주, 대전, 전주 등 대도시급 도청소재지에서만민간 상업방송이 전파를 발사하고 있었다. 여기서 영동의 지역적 중요성과 영서 문화권은 물론 서울과도..
제1장 격동 30년 영동주민과 30년 강릉문화방송이 산자수려한 제일 강산 강릉에서 전파를 발사하기 시작한지도 1998년 6월 22일로 30주년을 맞았다. 돌이켜보건대 지나온 30년은 전파의 사각지대에서 삶을 영위하는 영동 100만 주민에게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는 선진의식과 풍요를, 교육과 문화면에서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의 전파로 고급화를 지향했으며, 산업·교통·통신 · 주민생활등 일상사에는 바르고 빠른 정보전달의 메신저로서 그 소임을 다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한 30년이었다. 이제 30년의 역사를 간직한 강릉문화방송은 영동지역 뉴미디어 산업의 선두주자이자 전파매체의 총아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강릉문화방송은 30년 동안 라디오의 AM과 FM, 그리고 TV등 방송 종합매체로 안정된 성장을 거..
어제 중복인데 몸보신좀 하셨나요? 오늘 대서라지요? 일년중 가장 더운날입니다. 덥기도하고, 습도도 높습니다. 연일 뉴스에서 2천명을 육박하는 확진때문에 마스크도 못벗고 있답니다. 푹푹찌는 해가 떨어지고 밤이되면,그래도 밤공기는 아직은 선선한 편입니다. 언제 열대야가 올지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해가 길어져서, 저녁을 먹고도 한참은 훤한 밖을 바라보지만, 이것도 잠깐이 아닐까합니다. 어쨌든 낮은 점점 짧아지고 있는중이니깐요. 무서운여름이 어서 빨리지나고, 마스크를 벗는날도 빨리 오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