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이면 공공기관들은 긴장 속에 성적표를 받아듭니다.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의 희비가 갈리는 바로 그 순간, 2024년 경영평가 결과가 지난 6월 20일 발표됐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S등급(탁월)은 나오지 않았고, 3년째 빈자리를 유지했습니다. 반면 A등급(우수) 15곳, D등급(미흡) 9곳, E등급(아주미흡) 4곳으로 낙제점을 받은 기관이 13곳이나 됐죠. 이 성적표는 단순한 순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책임 경영과 정부 정책 방향성이 이제는 재무 성과를 넘어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된다는 신호로 읽혔습니다. 아래 표에서 전체 등급 분포를 먼저 확인해보세요.
| 등급 | 의미 | 기관 수 |
|---|---|---|
| S | 탁월 | 0 |
| A | 우수 | 15 |
| B | 양호 | 28 |
| C | 보통 | 31 |
| D | 미흡 | 9 |
| E | 아주미흡 | 4 |
목차
3년 연속 S등급 없는 이유는 뭘까
올해로 S등급이 사라진 지 3년째입니다. 기재부 경영평가단은 압도적 혁신 성과와 국정과제 이행력, 재무 건전성까지 모두 완벽해야 S를 주는데, 현실에서 쉽지 않은 조합입니다. 공공기관 특성상 위험을 회피하고 단기 실적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 본받을 만한 초우수 사례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실제로 한 평가위원은 “S등급 기준이 애초에 너무 높아서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내부에서 언급하기도 했죠.
하지만 저는 다른 측면에서 바라봅니다. 3년 연속 S가 없는 건 공공기관이 ‘탁월함’보다 ‘무난함’에 안주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일부러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며 혁신을 압박하는 신호로 읽힙니다. 특히 2024년 평가에서는 직무급 도입 여부와 운영 성과가 새로운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직무급을 잘 운영한 기관은 2026년 인건비를 0.1% 더 받지만, D등급 이하이면 최대 1%가 삭감됩니다. ‘일한 만큼 보상받는 구조’로의 전환을 강하게 주문하는 거죠.
A등급 기관, 전력과 사회안전망이 강했다
A등급 15곳 중에서 전력·발전 계열사가 5곳이나 이름을 올리며 압도적인 성적을 냈습니다.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남동발전, 남부발전, 동서발전이 대표적이죠. 이들이 공통적으로 잘한 점은 재무 성과 개선, 해외 사업 확대, 친환경 에너지 전환 등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발맞춘 실행력이었습니다. 특히 한전은 천문학적 부채 논란에도 불구하고 A를 받아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전기요금 현실화와 자구 노력이 평가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준정부기관 중에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연금공단, KOTRA,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이 A를 받았습니다. 이 기관들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사회안전망과 경제 활성화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심사 효율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인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죠. 공공기관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입니다.
이번 A등급 기관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국정과제 연계성’입니다. 정부가 중점 추진하는 물가 안정, 주거 안정, 중소기업 지원, 에너지 전환 등의 아젠다를 기관의 주요 사업 목표와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했느냐가 핵심이었죠. 단순히 매출이나 흑자 규모만으로는 높은 등급을 받기 어려워졌습니다.
D와 E, 낙제점 기관 13곳의 아쉬움
반대로 하위권 기관들의 명단을 보면 눈에 띄는 곳이 여럿 있습니다. D등급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2년 연속 포함되면서 기관장 해임 건의 대상이 됐습니다. 전세사기 대응이 늦고 보증사고 관리가 허술했던 점이 결정타였죠. 그 외에 대한석탄공사, 그랜드코리아레저(GKL), SR(수서고속철),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우체국물류지원단, 한국국제협력단, 한국산업인력공단 등이 D를 받았습니다.
E등급(아주미흡)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광해광업공단, 우체국금융개발원, 한국관광공사, 한국환경산업기술원까지 4곳. 특히 한국관광공사는 코로나 이후 회복이 더딘 데다 해외 관광객 유치 실적이 목표치에 크게 못 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 기관은 성과급이 전액 삭감되고 경상경비도 최대 5% 깎입니다. 게다가 2년 연속 D나 E를 받으면 기관장 해임은 물론, 차년도 인건비 증액도 제한됩니다. 한 번 낙인찍히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공공기관 평가에서 하위권이 늘어난 원인은 구조적 문제와 리스크 관리 실패로 분석됩니다. 예컨대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정책 수요 급증에 비해 내부 통제가 제때 따라가지 못한 케이스고, 한국관광공사는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한 업종 특성상 회복력이 부족했던 점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평가단은 이들 기관에 대해 경영개선계획을 요구하고 컨설팅을 지원하지만,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동반되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평가의 뒷이야기 체크리스트와 현장실사
평가 결과 자체보다 더 흥미로운 건 그 뒷면입니다. 공공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경영평가 보고서보다 체크리스트 답변서가 더 두껍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실사 과정이 녹록지 않습니다. 지난해 한 기관에서 근무한 지인의 경험을 들어보면, 평가위원들이 실사 전에 보내는 체크리스트 질문이 최소 2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기관은 닷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수백 페이지 분량의 추가 자료를 준비해야 하고, 야근은 기본입니다.
특히 현장실사는 자료 준비에 ‘의전’까지 신경 써야 해서 더 까다롭습니다. 간식 준비, 이동 동선 정리, 현수막 배치 등 별의별 준비가 필요합니다. 상대적으로 집체실사(평가단이 지정한 장소에서 진행)가 더 편하다는 게 중론입니다. 저도 예전에 한 공기업에서 경영평가를 준비할 때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당시 실사장에서 평가위원과 우발적 충돌을 겪었지만 결국 우수 등급을 받은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 담겨 있습니다.) 평가가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의 역량을 시험하는 과정임을 실감합니다.
성적표가 우리에게 주는 실질적 메시지
이 평가 결과는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D나 E를 받은 기관들은 재정 압박으로 신규 투자와 인력 충원을 줄이게 되고, 그 여파는 협력사와 지역 경제로 전가됩니다. 예를 들어 한국관광공사의 등급 하락은 지역 관광 프로젝트 예산 삭감으로 이어져 소상공인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반면 A등급을 받은 전력 공기업들은 해외 수주나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더 과감해질 것이고, 이는 관련 산업 일자리 창출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번 평가는 ‘직무급’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해 공공기관 인사 시스템의 판을 흔들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일의 가치에 따라 보상을 달리하자는 취지로, 실제로 직무급을 잘 운영한 기관은 인건비를 더 받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등급 하나 넘어 공공기관의 문화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로 읽힙니다. 앞으로 2026년 평가부터는 직무급 도입 여부가 더 큰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이 성적표를 통해 우리는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위권 기관은 재무 개선과 정책 이행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하위권 기관은 비용 통제와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습니다. 투자자나 경제 관심러라면 공기업 관련 주식, 협력사 실적, 지역 개발 계획을 이 평가 결과와 함께 살펴보면 유용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의 과제와 바람
3년 연속 S등급이 없는 현상은 평가 체계 자체에 대한 근본적 논의를 촉발하고 있습니다.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공공기관의 구조적 한계를 반영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한편으로는 감사 직무수행실적 평가에서 A등급은 줄고 D등급은 늘어난 점도 우려됩니다. 내부 통제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대규모 비위나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거버넌스 강화가 시급합니다.
정부는 이미 하위 등급 기관에 대해 경영개선계획 제출과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지만, 단기적 처방보다는 기관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구조 개혁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E등급 기관은 새로 4곳으로 늘어난 만큼, 단순한 패널티보다는 근본적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결국 이 성적표는 일부는 웃고 일부는 긴장하게 만들지만, 우리는 그 사이에서 공공 서비스의 방향성과 개선점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올해의 평가가 단순히 성과급 당락에 그치지 않고, 실제 국민 편익으로 이어지는 혁신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내년도 평가에서는 과연 S등급이 부활할지, 아니면 또 다른 변화가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