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 테러 60시간의 공포 속 한국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2008년 11월 26일 밤 뭄바이에서 벌어진 일

2008년 11월 26일 밤, 인도 경제의 중심이자 천삼백만 명이 살아가는 거대 도시 뭄바이는 갑자기 총성과 폭발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파키스탄에 기반을 둔 무장 단체 소속 테러범 10명이 고무보트를 타고 해변에 상륙한 뒤 기차역과 카페와 유대인 시설과 100년 전통의 타지마할 호텔을 동시에 공격했습니다. 이 글이 다루는 뭄바이 테러는 인도판 911이라 불릴 만큼 참혹했고, 무려 60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활기찬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많은 사람이 울부짖는 소리 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구분내용
발생 시각2008년 11월 26일 밤
테러범무장한 10명
주요 장소기차역과 카페와 타지마할 호텔
피해170여 명 사망과 300여 명 부상
한국인 상황타지마할 호텔에 100여 명 고립

기차역 대합실에서는 수류탄이 터지고 총기가 난사되면서 60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간과 장소를 노린 공격이었기에 피해는 더 컸습니다. 무엇보다 무섭게 느껴졌던 점은 이들의 움직임이 조직적이고 치밀했다는 것입니다. 테러범들은 지시자의 명령을 따르며 최대한 오랜 시간 최대한 많은 피해를 남기려 했습니다. 총기 난사에 그치지 않고 수류탄을 던지고 방화까지 저지르며 호텔 곳곳에서 공포를 확산시켰습니다. 인도 정부는 뉴델리에서 정예 대테러 부대 블랙캣을 투입했지만 뭄바이까지 오는 데 수시간이 걸려 초기 대응이 어려웠습니다.

뭄바이 테러

타지마할 호텔에 갇힌 한국인들

뭄바이 테러의 진짜 공포는 호텔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타지마할 호텔 신관 19층 연회장에서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주뭄바이 총영사관이 공동 주관한 한국 기업인 친선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한국인들은 연회장에 머물렀고, 일찍 자리를 떠난 4명은 구관 커피숍으로 향했습니다. 테러범들이 호텔 로비와 1층 커피숍을 장악하면서 호텔 안에는 한국인을 포함한 천여 명이 고립되었습니다. 세계적인 명사들이 머물던 호텔이 하룻밤 사이에 생사의 갈림길이 되었습니다.

호텔 직원들이 만든 안전지대

호텔 직원들은 투숙객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직원 전용 통로를 통해 200여 명을 개인 회원제 클럽 더 챔버스로 대피시켰고, 손님들에게 차가운 물수건과 샌드위치를 건네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직원들만 있는 공간에서는 서로를 보듬으며 떨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손님들 앞에서는 의연함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들도 공포에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테러범들이 더 챔버스 쪽으로 접근하자 직원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손님들 앞을 막아섰고, 그 과정에서 7명의 호텔 직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문 경호팀이 연 탈출로

연회장에는 크리켓 대회를 위해 방문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전문 경호팀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들은 호텔의 구조를 빠르게 파악하고 비상계단을 이용한 탈출 계획을 세웠습니다. 주뭄바이 총영사관의 강기택 영사는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그건 나여야 한다는 각오로 탈출 선두에 섰습니다. 경호팀의 안내 아래 100명이 넘는 인원이 비상계단을 통해 무사히 호텔을 빠져나왔습니다. 테러 발생 5시간 만에 이뤄진 탈출이었고, 살았다는 안도감이 모두에게 퍼졌습니다. 탈출한 뒤에도 강기택 영사는 아직 호텔에 남아 있는 한국인 4명을 기다리며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경호팀과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커피숍에 고립된 네 명의 한국인

일찍 자리를 떠난 네 명은 커피숍에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다 테러범이 나타나면서 그 자리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 손님들과 함께 테이블과 의자로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소리를 죽인 채 밤을 보냈습니다. 테러범들이 객실을 돌며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포는 더 커졌습니다. 누군가 발견할까 봐 숨소리조차 조심해야 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커피숍에 있던 모두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낮추고 다음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사다리차로 마지막 탈출

시간이 흐른 뒤 소방대원들이 커피숍 창문 밖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소방차의 사다리차를 이용해 탈출을 돕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창가에 가장 가까이 있던 한국인 4명은 먼저 다른 사람들이 내려갈 수 있도록 도운 뒤에야 커피숍을 떠났습니다. 강기택 영사는 그들의 안전을 확인한 다음 다시 영사관으로 돌아가 뭄바이 곳곳에 있을지도 모를 한국인들의 연락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호텔에 갇혔던 한국인들은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습니다.

60시간의 참사가 남긴 교훈

테러는 발생 60시간 만에 최종 진압되었습니다. 170여 명이 숨지고 3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테러범 10명 중 9명은 현장에서 사살되었고, 1명은 생포되었습니다. 생포된 테러범은 당시 21살이었고 돈 때문에 범행에 가담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선택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 대가 없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테러범과 구조자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사람을 지키려는 선택이 만든 기적

뭄바이 테러는 단순한 참사로 기억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날 호텔 직원들은 손님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전문 경호팀은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하겠다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생존자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국인들은 18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영웅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재난 앞에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이 사건은 보여줍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그날의 기억을 잊지 않고, 어려운 순간에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당시 타지마할 호텔에 있던 한국인들은 모두 무사히 빠져나왔나요?

A. 네, 호텔 직원과 전문 경호팀과 소방대원의 도움으로 모두 구조되었습니다. 일부는 비상계단을 통해, 나머지는 사다리차를 통해 탈출했습니다.

Q. 왜 인도판 911이라고 하나요?

A.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된 데다 60시간 동안 이어졌고 민간인 피해가 컸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발생한 최악의 참사라는 의미에서 붙은 표현입니다.

Q. 호텔 직원들이 희생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손님을 지키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직원 전용 통로로 손님을 대피시키고 인간 방패가 되어 준 직원들이 있었기에 많은 생명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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