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광복절 제81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가 독립유공자 283명을 포상한다고 13일 밝혔습니다. 이 중 백범 김구 선생의 부인이신 최준례 여사가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동안 남편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최준례 여사의 삶이 독립운동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김구 최준례 건국훈장 추서의 의미와 독립운동 공로
최준례 여사는 1904년 김구 선생과 결혼한 이후 줄곧 독립운동의 곁을 지킨 인물입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안악사건을 날조하여 김구 선생을 체포하자 4년 동안 옥바라지를 하였고, 황해도 안악군의 안신여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여성 계몽에도 앞장섰습니다. 1920년 상하이로 망명한 이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인 남편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면서 일본 경찰로부터 불온한 조선인으로 지목되어 감시를 받는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국가보훈부는 최준례 여사가 중국으로 망명한 1920년부터 사망한 1924년까지 임시정부의 전성기에 남편 김구 선생이 중책을 맡았던 만큼 부인의 책무도 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최 여사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국내 신문들은 파란 많은 일생, 남이 겪지 못할 고생이라는 표현으로 그녀의 고투를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포상의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내용 | 비고 |
|---|---|---|
| 포상 인원 | 독립유공자 283명 | 건국훈장 65명, 건국포장 29명, 대통령표창 189명 |
| 최준례 여사 |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임시정부 활동 지원, 옥바라지, 여성 계몽 |
| 함께 선정된 인물 | 김영호 선생(애국장), 김덕린 선생(애족장) | 노동자, 문화 예술인 등의 공로 인정 |
특히 이번 포상은 3·1운동 피살자 명부와 범죄인 명부 등 사료 수집과 현지 조사를 통해 명단을 구성했으며, 그동안 평가받지 못했던 문화 인물, 여성, 노동자 등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뜻깊습니다.
최준례 여사가 걸어온 고난의 길과 인천 인연
올해는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의 해이기도 합니다. 백범과 그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에 이어 부인 최준례 여사까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게 되어 더욱 의미 있는 해가 되었습니다.
최준례 여사의 삶을 돌아보면 인천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11년 안악사건에 연루된 김구 선생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14년 인천 감옥으로 이감되었는데, 이 시기에 최 여사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위해 인천을 오갔습니다. 당시 김구 선생은 쇠사슬을 찬 채 인천항 축항 공사장에서 노역을 했고, 객주 안호연 등 인천 인사들이 그의 옥바라지를 도왔다고 합니다.
최준례 여사는 1924년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하이 자택에서 실족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후 생활이 어려워진 시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1925년 손주를 데리고 인천항으로 귀국했으며, 동아일보 인천지국의 도움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며느리의 죽음과 생활고로 인해 귀국했으나 형편이 암담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김구 선생은 이러한 인천과의 애틋한 인연을 잊지 않고 1946년 4월 38도선 이남 지방 순시 때 인천을 가장 먼저 찾았으며, 백범일지에서 인천에 대해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최준례 여사의 공로를 기리는 일은 단순히 한 개인의 업적을 기리는 것을 넘어,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한 모든 여성과 가족들의 노력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됩니다. 역사의 뒤편에서 조용히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완성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광복절 포상 명단에는 최준례 여사 외에도 충남 천안의 직산광산 광부로 만세 시위를 이끌다 순국한 김영호 선생이 애국장을, 중국에서 영화 황제로 불리며 항일 영화에 주연으로 열연한 배우 김덕린 선생이 애족장을 받았습니다.

김덕린 선생은 임시정부 외무총장 김규식 선생의 처조카로, 상하이에서 김규식 선생이 운영하는 민족교육기관 남화학원에서 항일 의식을 키우고 이후 임시정부를 배후 지원했습니다. 1930년대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자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다수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한국과 중국 국민에게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김덕린 선생의 삶은 문화일보의 보도 기사에서 더 자세히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최준례 여사의 서훈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독립운동가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조용히 희생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이제서야 제대로 조명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겨레의 상세 기사에서도 이번 포상의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광복절 포상과 함께 보는 독립운동사의 숨은 주역들
이번 광복절 포상은 문화 예술과 노동 현장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을 두루 포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김영호 선생은 광부라는 신분으로 3·1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순국했고, 김덕린 선생은 영화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 항일 의식을 고취했습니다. 최준례 여사는 가정과 교육 현장에서 독립운동을 뒷받침했습니다.
인천 지역에서는 1920년대 원산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안용균 선생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인천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조봉암 선생과 3·1운동 당시 인천 상가 철시 투쟁을 주도한 임영균 선생에 대한 서훈은 이번 포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재조명과 앞으로의 과제
최준례 여사의 건국훈장 추서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공로를 재평가하는 중요한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안신여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여성 계몽에 힘썼던 그녀의 삶은 단순히 남편을 내조한 아내가 아닌, 독립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번 포상에는 최준례 여사처럼 흔적도 없이 잊혀졌던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구 선생과 최준례 여사의 이야기는 경인일보의 상세 보도를 통해 인천 지역과의 인연과 함께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가보훈부가 지속적인 사료 발굴과 조사를 통해 숨은 독립유공자를 찾아내고,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일에 더욱 힘쓰기를 기대합니다. 역사의 뒤편에 묻혀 있던 이야기가 빛을 볼 때, 우리는 더욱 완전한 광복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김구 최준례 건국훈장 소식과 우리가 기억할 가치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김구의 해에 부인 최준례 여사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된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입니다. 1904년 결혼부터 192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 동안 독립운동의 곁을 지킨 최준례 여사의 삶은 진정한 동지애의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포상을 계기로 우리는 독립운동의 역사가 특정 영웅의 활약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뒤에서 묵묵히 헌신한 수많은 가족과 여성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최준례 여사의 옥바라지와 상하이 망명 생활, 그리고 임시정부 지원 활동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숨은 독립유공자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발굴되고 기려지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가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완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최준례 여사는 언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되었나요?
A: 2026년 광복절 제81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가 8월 13일에 포상 명단을 발표하면서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Q: 최준례 여사의 주요 독립운동 공로는 무엇인가요?
A: 김구 선생이 안악사건으로 투옥되었을 때 4년간 옥바라지를 했고, 안신여학교 교사로 여성 계몽에 힘썼으며, 상하이 망명 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Q: 이번 광복절 포상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A: 283명이 포상되었으며, 그동안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 문화 예술인,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의 독립운동가들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