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두 전설, 장훈과 백인천. 일본 프로야구에서 함께 뛰며 전성기를 보낸 두 사람은 2026년 8월 15일, 백인천 전 감독의 별세로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장훈은 일본 매체를 통해 백인천 전 감독을 추모하며 당시의 생생한 기억을 전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두 사람의 인연과 백인천 감독의 일본 진출 이야기,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 원년 4할 타자의 위업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장훈 백인천 추모, 두 전설의 만남
장훈(86)은 16일 일본 매체 스포니치에 기고한 글에서 백인천 전 감독을 “나보다 세 살 어린 소중한 후배이자 같은 시대를 함께 달려온 동료”라고 회상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도에이 플라이어스(현 닛폰햄 파이터스)에서 뛰던 장훈은 한국 야구 관계자로부터 “좋은 선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백인천을 훈련에 참여시켰습니다. 직접 플레이를 본 적도 없었지만, 포수로서 체격이 좋고 주력도 뛰어나다는 평가에 당시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에게 추천했다고 합니다.
| 구분 | 장훈 | 백인천 |
|---|---|---|
| 일본 진출 | 재일교포 2세 | 1962년 단독 진출 |
| 소속 팀 | 도에이, 롯데 | 도에이, 다이헤이요, 롯데 |
| 주요 기록 | 통산 3000안타 | 퍼시픽리그 타격왕, 4할 타율 |
| 포지션 | 외야수 | 포수→외야수 |
백인천 전 감독은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으며 월남했습니다. 경동중에서 야구를 시작해 경동고 시절에는 당대 고교 최고의 타자에게 주어지는 이영민타격상을 받을 만큼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1961년 실업야구 농협에 입단한 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에이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프로야구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와 기댈 수 있는 무대조차 없었습니다.
일본에서의 고난과 극복
백인천 전 감독의 일본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언어 장벽이 컸습니다. 장훈은 “백 전 감독은 첫해에 내 뒤를 따라다니며 일본어를 공부했다”고 전했습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한 것입니다. 특히 백인천 전 감독은 기가 매우 센 성격이었습니다. 자신이 낸 사인대로 투수가 공을 던지도록 강요했고, 투수들과 의견이 맞지 않자 결국 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했습니다. 장훈은 “오히려 이 과정이 일본에서 성공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외야수로 변신한 백인천 전 감독은 공격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에이를 시작으로 다이헤이요와 롯데에서 1981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특히 1975년 다이헤이요 소속으로 타율 0.319를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한국 출신 타자가 일본 프로야구 최고 타자의 자리에 오른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주먹다짐과 승부욕의 일화
장훈이 전한 일화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백인천 전 감독과 도에이 4번 타자 오스기 가쓰오와의 주먹다짐입니다.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어느 날 백인천 전 감독이 경기 전에 “싸우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장훈은 “어쩔 수 없이 10분만 하라고 허락했는데, 모두가 지켜보는 클럽하우스에서 둘은 주먹을 휘둘렀다”고 회상했습니다. 10분이 지나 싸움을 끝내려 하자 오스기가 “선배님, 제가 때린 횟수가 한 번 적습니다.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요즘 프로야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거칠었던 시대의 이야기지만, 그만큼 백인천 전 감독이 일본에서 얼마나 강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버텼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개척자
두 사람의 인연은 도에이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장훈은 1980년 롯데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머린스)에서 개인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을 때 백인천 전 감독과 함께 뛰었습니다. 그리고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장훈은 백인천 전 감독을 MBC 청룡의 선수 겸 감독으로 추천했습니다. 장훈은 백인천 전 감독을 두고 “한국 프로야구의 개척자라고 할 만한 존재”라고 평가했습니다.
백인천 전 감독은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의 선수 겸 감독으로 뛰며 타율 0.412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마흔을 바라보던 나이에 세운 이 기록은 한국 프로야구 최초이자 아직까지 마지막인 시즌 4할 타율입니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천재 타자들이 4할에 도전했지만, 누구도 백인천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장훈과 백인천 전 감독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남아야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장훈은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야 했고, 백인천 전 감독은 한국에 프로야구조차 없던 시절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일본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백인천 전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와 또 하나의 역사를 썼습니다.
백인천 전 감독은 일본프로야구 통산 20시즌 1,96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8, 209홈런, 776타점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1982년 단 한 시즌 만에 4할 타율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장훈이 전한 추억은 백인천이라는 이름 앞에 붙은 ‘4할 타자’라는 네 글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야구 인생을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인천 전 감독은 15일 오전 6시 41분, 충남 천안 단국대학교 병원에서 뇌출혈로 치료받던 중 별세했습니다. 앞서 뇌경색으로 투병하던 중 14일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고, 한때 맥박이 돌아오는 기적 같은 상황도 있었지만 끝내 다시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발인은 17일 오전 8시에 엄수됩니다.
장훈의 기고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한국 야구의 뿌리를 보여주는 소중한 증언입니다. 두 전설의 우정과 도전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야구 팬들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백인천 전 감독의 명복을 빕니다.
장훈과 백인천의 인연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연합뉴스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백인천 감독의 4할 타율 기록은 언제 세운 건가요?
A: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 시즌에 MBC 청룡의 선수 겸 감독으로 뛰며 타율 0.412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이자 아직까지 마지막인 시즌 4할 타율입니다.
Q: 장훈과 백인천은 어떤 관계였나요?
A: 장훈은 백인천보다 세 살 많은 선배였고, 1962년 백인천의 일본 진출을 도왔습니다. 두 사람은 도에이와 롯데에서 함께 뛰며 전성기를 보냈고, 1982년에는 장훈이 백인천을 MBC 청룡 감독으로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Q: 백인천 감독의 일본 프로야구 통산 기록은 어떻게 되나요?
A: 20시즌 동안 1,96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8, 209홈런, 776타점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1975년에는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