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철 자폐 아들 1000곳 거절 끝에 찾은 네버랜드 감동 사연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중증 자폐 아들을 위해 1년 넘게 전국 1,000곳의 시설을 찾아다녔지만 단 한 곳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사연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8월 12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355회에 출연한 전경철 작가는 간암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에도 아들이 살아갈 곳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과정을 담담하게 고백했습니다. 특히 전경철 자폐 아들 제원 씨는 정신 연령이 2.3세로, 지난 27년간 두 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었다고 말해 스튜디오를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27년간 두 살 신생아를 키운 아버지의 고백

전경철 작가는 아들 제원 씨에 대해 “1999년생이고 제 눈에는 잘생긴 귀공자 청년”이라며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이어 “의학계에서 진단한 연령이 2.3세다. 27년간 두 살 신생아를 키우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아들의 몸은 성인이 됐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아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경철 자폐 아들 제원 씨는 20살 무렵 체중이 160kg까지 불어났고, 의사로부터 “비만이 아니라 생사의 문제”라는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전경철 작가는 아들의 체중을 줄이기 위해 먹는 양을 제한하면서 격한 갈등을 겪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먹을 거 왜 안 주냐고 손톱으로 잡아뜯었다. 아들과 먹거리 전쟁을 하면 팔이 온통 흉터였다”며 냉장고에 쇠사슬 자물쇠를 걸고 육탄전을 매일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1년 만에 70kg 감량에 성공했고, 이 경험은 이후 더 큰 시련을 견디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뇌경색 치매 어머니와 자폐 아들을 동시에 돌봐야 했던 시간

전경철 작가는 아들만 돌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뇌경색과 치매를 앓았던 어머니까지 3년간 수발을 들었습니다. 그는 “해가 뜨는 새벽이 돼서야 아들이 잠들었다. 고단함을 달래주는 건 소주뿐이었다”며 “몸 상태를 자각했지만 병원에 갈 수 없었다. 가면 들을 말이 뻔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지난해 4월 급격히 건강이 악화됐고, 의사로부터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전경철 작가는 치료를 거부했습니다. “전 27년간 중증 자폐 아들을 혼자 키워왔는데 많이 힘들었나 보다. 이제 쉬고 싶다”는 말이 저도 모르게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들이 살 곳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의사를 찾아가 “조금만 더 살게 해달라. 치료도 할 테니 6개월만 더 살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아들을 위한 마음이 생존 의지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1000곳 문을 두드렸지만 단 한 곳도 받아주지 않았다

전경철 작가는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책자에 적힌 전국의 장애인 거주 시설 약 1,000곳의 문을 모두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단 한 곳도 아들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중증 자폐 장애인의 경우 지적 장애인보다 돌봄 비용과 인력이 훨씬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에 1등으로 등록된 중증 자폐인이고 26살이라고 하면 거기서 끝이다. 접수도 안 되고 만나주지 않는다”고 안타까운 현실을 전했습니다.

전경철 자폐 아들 제원 씨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남은 선택지는 정신병원뿐이었습니다. “구속복으로 온몸을 묶고 급식을 먹으며 살라는 것”이라며 절망했던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결국 그는 인터넷에 사연을 올렸고, MBC ‘실화탐사대’를 시작으로 방송이 긴급 편성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방송 이후 약 8,000만 원의 후원금이 자발적으로 모였고, 기적처럼 아들을 맡아줄 거처를 찾게 됐습니다.

아들의 새 보금자리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캠핑

전경철 작가는 방송 후 한 달 만에 제원 씨가 살 곳을 찾았고,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습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네버랜드’를 마침내 찾은 것입니다. 하지만 입주 후에는 아들을 만나러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성인이 20세에 독립하지 않나. 부모 품이 그립고 집이 생각나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힘이 되겠냐”며 “서서히 잊혀지는 게 옳은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던 중 가을에 아들과 캠핑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전해졌고, MBC PD의 도움으로 입주 3개월 만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1박 2일 캠핑을 하게 됐습니다. 전경철 작가는 “그날 아들이 한 숨도 안 잤다. 이상하게 뭘 느꼈는지 1초도 잠들지 않고 절 쳐다보고 지켜보더라”며 “새벽 4시에 옷을 입히고 산책을 1시간 했다. 해 뜰 때까지 안 자고 저를 끌고 다녔다”고 감동적인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전경철 자폐 아들 제원 씨와 아버지가 함께한 마지막 캠핑 모습

이날 캠핑에서 제원 씨는 평생 하지 못했던 ‘아빠’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전경철 작가는 “아빠라는 존재는 깨끗하게 잊고 네 행복만을 위해 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솔직하지 않은 심정”이라며 “희미하게 기억나는 나이 많은 남자가 있는데 나를 바라보면 많이 따뜻했고 맛있는 걸 많이 차려주던 사람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게 마지막 당부”라고 말해 많은 이들의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전경철 작가가 꿈꾸는 피터팬 재단과 남은 소망

전경철 작가는 죽기 전에 자신과 같은 상황을 겪는 부모들을 위해 ‘피터팬 재단’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제가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듯 아들의 존엄을 지켜줘야 한다”는 말은 장애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절절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27년간 행복을 안겨준 잘생긴 아들을 품에 안고 있겠다”고 말하며 스튜디오에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전경철 자폐 아들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가족의 사연을 넘어, 장애인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중증 장애인을 돌볼 수 있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현실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가족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경철 작가의 사연을 접한 많은 이들이 응원과 후원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의 남은 시간이 조금 더 따뜻하게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중증 자폐 장애인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내가 없으면 아이는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전경철 작가는 그 불안을 행동으로 옮긴 아버지였습니다. 그가 찾아낸 네버랜드가 앞으로도 제원 씨에게 안전한 보금자리가 되어주길, 그리고 더 많은 ‘피터팬’ 아버지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전경철 자폐 아들 사연 전문 보기

자주 묻는 질문

Q: 전경철 작가의 아들은 현재 어디에 살고 있나요?
A: 방송 후 한 달 만에 전국 1,000곳을 찾아다닌 끝에 아들을 받아줄 거처를 찾았습니다. 현재 제원 씨는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Q: 전경철 자폐 아들의 건강 상태는 어떤가요?
A: 제원 씨는 정신 연령이 2.3세로, 평생 두 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20살 때 160kg이던 체중을 90kg까지 감량해 지금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Q: 전경철 작가가 피터팬 재단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자신처럼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장애 자녀가 살아갈 곳을 찾지 못하는 부모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의 마지막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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